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효자 홍정희 선생은 조선후기인 1880년대 초 이 마을에서 태어난 이름난 효자로서 본관은
남양(南陽)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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● 효자문 .지정번호:안산시 향토유적 제19호 .소 재 지:안산시 대부남동
748번지 .시 대:조선후기 .규 모:3.2×1.35m
[구
조] 현재의 정문은 팔작지붕에 양기와를
올린 홑처마 건물로서 벽은 시멘트조이며 근대에 개수(改修)된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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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유 래] 효자 홍정희(洪貞羲) 선생은 조선후기인 1888년대 초 대부남동에서 태어난 이름 난 효자로서 본관은 남양이다.
그는 어릴때부터 성격이 온순하고 부모에 대한 효성 (孝誠)이 지극하여 정성을 다해 봉양(奉養)했으며 그 뜻을 거슬리지 않았다. 특히
부친께서 별세(別世)하자 그는 깊이 애통(哀痛)해 하며 묘소 앞에 자그마한 여막(廬幕)을 지어놓고 그곳에서 3년동안 거처하였다. 그는
육식(肉食)을 입에 대지않고 소찬(素饌)으로 일관했으며, 한번도 자신의 집에 내려오지 않는 등 선친(先親)의 묘소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.
그의 뛰어난 효행 (孝行)과 마음가짐은 마침내 조정(朝廷)에 까지 알려져 고종(高宗) 30년(1893) 6월 효자 정문(旌門)이 이곳에 건립되고
만인의 귀감(龜鑑)으로서 표상(表賞)되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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● 쌍계사 이 사찰은 육사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처음에는 정수암이라고 부렸으나 조선 고종 7년에 육사대사가 5마리의
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고 정수암을 개명하여 쌍계사라고 불려지고 있다.조선시대 초기에 제작되었다는 목불좌상이
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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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재지 : 안산시 대부북동 1058 / Tel
:886-2110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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● 자선비 ---▶ 좀더자세히 이찬(李燦) 선생은 한말(韓末)에서 1920년대초까지 생존했던 덕망 높았던 재산가, 유지로서 본관은
경주(慶州 |